Liar 4
“민우, 콜라 안 먹어.”
“네?”
“민우, 음료수 녹차만 먹어. 티비도 안 봐?”
불과 1분전까지만 해도 깔깔 대며 사이좋게 놀던 이들이
갑작스레 신경전이 붙었다. 평소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는 민우 때문에 정혁이나 나나 민우와 동행하게 되면 대부분 한식집이나 바를 찾기
일쑤였다. 패스트푸드점을, 그것도 느끼함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KFC’에 온건 실로 몇 년 만인 듯 했다. 나도 그렇고 정혁이도 각자 햄버거를
하나씩 들고 먹고 있었지만 민우는 앞에 놓인 감자만 깨작댈 뿐 먹는 데에 진전이 없었다. 다 민우가 데려온 여자친구라는 그 아가씨 때문이었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 이런 곳이 좋아하는 듯 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민우의 깨작거림이 맘에 안든 건지 여자가 콜라라도 먹으라며 강요를
하는 것이었다. 민우가 괜찮다며 웃으며 거절하자 그걸 본 정혁이의 눈이 매섭게 뜨여졌다. 그렇게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났다.
“오빠, 콜라 안 먹어?”
“아, 아냐. 지금은 그냥 속이 안 좋아.”
“근데 에릭오빠가 말하는 건 뭐야? 이런데
와도 별로 싫단 말 없었잖아.”
“아냐, 그냥 말하는 거야.”
그 아가씨의 당돌함도 만만치 않았으니, 가운데 끼인 민우만
난처해진 입장이었다.
“오빠가 속이 안좋다잖아요.”
“민우 여자친구라면서 민우가 나오는 티비도 안 봐? 티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데?”
“티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건 그쪽이겠죠.”
“뭐?”
“자자자, 기분 좋게 모인 건데 분위기가
왜이래.”
민우의 찡그린 표정에 얼른 나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날카롭게 신경이 선 두 사람 사이에 끼자 날에 베일까
조심스러워졌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민우 녀석은 어떻게 늘 이런 상황들을 대처했을까. 새삼 민우가 대단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야, 그리고 너 내가 저번에 향수 뿌리지 말라고 했지.”
“야야 거리지 말라고 했죠, 내가.”
“너 민우 파우더
냄새 맡으면 재채기 하니까 화장도 진하게 하지 말라고 했냐, 안했냐? 입술은 그게 또 뭐냐? 쥐 잡아먹었냐? 촌스럽게 색깔이 그게 뭐냐? 어디
그래갖고 민우가 여자친구라고 얘기하고 다니겠냐?”
한번 시작하자 정혁이의 시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화장에 대해 한번 연설을
끝내자 이내는 액세서리며 머리, 옷, 심지어는 구두까지 시비를 걸고 나서는 것이다. 아무래도 단단히 꼬인 듯 했다. 하지만 여자애도 한두 번은
아닌 듯 비죽대는 여유까지 보이며 정혁이를 받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야- 아아아아-”
보다 못해 결국 정혁이의
옆구리를 꼬집는 것으로 맥을 끊었다. 역시 엄살쟁이 문정혁이었기에, 살짝 비틀었음에도 온몸을 꼬아가며 아프다고 날뛰었다. 소리를 버럭 질러대는
녀석을 향해 민우 좀 보라고 눈짓을 하자 그제야 수그러든다. 민우의 두 눈이 날카롭게 녀석을 째려보고 있었다.
“야.”
화날 때만 내는 민우만의 저음이 튀어나와 순간 긴장이 되었다. 정혁이의 눈도 커졌다.
“쫓아오면. 죽는다.”
짧은 두 마디만을 남긴 채 여친의 손을 잡고 휙 몸을 돌리는 민우. 정혁이는 ‘뭐?’하며 길이길이 날뛰었지만 내가 말리는 덕에 그
‘죽음’만은 겨우 면한 듯 했다.
“야, 문정혁.”
“왜, 자식아.”
“너네 셋이... 만나면 맨날 이러냐?”
“... 뭐, 한두 번은 아니지?”
“......”
욱하는 성질에 못 이겨 녀석의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겼다.
‘악-’ 소리가 났으니 꽤나 아팠을 거다. 그렇다고 니가 민우보다 더 아프냐?
“자식아, 아프냐?”
“왜 때리고
지랄이야!”
“넌 왜 민우가 여자친구만 생기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쟤가 싸가지 없게 굴잖아!”
“싸가지가
바가지든, 민우가 좋다는데 니가 왜 난리냐고. 니가 이민우 공식애인이라도 돼?”
철없는 녀석을 위해 결국 정곡을 찔러주었다. 다시
악쓰려던 녀석이 금세 꼬리를 내렸다. 그러고는 앞에 놓인 콜라 컵의 뚜껑을 열어 얼음을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녀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못난 놈에 자식. 여자라고 꼭 어디서 저런 애들만 주워다 사겨. 좀 제대로 된 애를 사겨야 내가 시비를 안걸 거 아냐.
그렇게 불만이면 괜찮은 애를 사귀란 말야. 저렇게 들떨어진 애 사겨서 뭐 어쩌자는 거야.”
“들떨어진 놈.”
내 눈엔 니가
제일 못난 놈이다, 문정혁.
시간은 생각보다 고요히 흘러갔다. 타이틀인 ‘Brand New’가 좋은 반응을 보이며
우리는 단체로 여기저기 쇼프로에 출연해 온갖 엽기적인 모습들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바쁜 게, 이럴 때는 좋았다.
마주하기 어려운 사람이 곁에 있어도 바쁘다보면 보지 않아도 될 때가 많았다.
“약에 취했나봐.”
아침부터 반쯤 감긴
눈으로 내게 와 ‘동완아, 민우 머리가 무거워’하며 내 어깨에 얼굴을 부벼댔다. 우선 종합감기약부터 먹인 후 상황을 봐서 병원을 가자는 내말에
착하게 끄덕끄덕 하고는 구석으로 가 잠을 청하는 녀석. 막 개인스케줄 -영화촬영이라고 한 것 같다- 을 마치고 바쁘게 나타난 정혁이가 민우의
안부부터 물었다. 민우가 감기인거 같다는 말에 잠이 든 녀석에게로 가 안색을 살피는 모습이 역시나 익숙했다.
“집에서 몸 돌봐주는
사람도 없나...”
민우는 자연스럽게 녀석과 살던 집을 나왔다. 얼마 안 된 일이었다. 제발 집만은 나가지 말라며 정혁이가
붙잡았지만 까맣게 탄 민우의 속은 이미 엉망이었다. 재가 되었다. 어쩌면 이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활동 내내 기운도 없이 주변을
걱정시키더니 기어코 몸살이 나고야 만다.
“에휴- 그러기에 속이나 작작 썩혔어야지.”
다 니네 둘이 못난 탓이다.
그렇게 정혁이를 놔두고 다른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글쎄- 왜 싫다는 거야!”
“싫어! 싫다고! 나
좀 내버려둬!”
“그럼 덜덜 떨지를 말던가!”
“놔둬, 좀! 머리 울려. 건들지 좀 마!”
2,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대기실을 울린 큰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또 정혁이와 민우, 두녀석이 싸우고 있었다. 식은땀 때문이었는지 머리까지 젖어 축 가라앉은 민우와
그런 민우의 팔을 잡아당기는 정혁이.
“으악- 야, 이 자식아!!”
한참 실랑이가 벌어져 이목이 집중되자 안
되겠다는 듯 정혁이는 민우를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벌떡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아, 누가 이
자식 보고 가녀린 몸매래. 순 개뻥이야. 살 좀 빼라. 왜 이렇게 무거워.”
무겁다고 투덜대면서도 내려달라 바락 대는 민우의
고함은 저편으로 흘려버린 채, ‘옷 좀 갈아입히고 올게.’ 라며 유유히 대기실을 나섰다. 민우도 한참 기운 빠지게 소리 지르고 나니 지친 듯 축
쳐진 채 들려나가고 있었다.
“저 자식, 또 쇼한다.”
투덜투덜 혜성이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불만인거다. 나도
불만이었다. 놔달라는 놈의 말에, 민우는 놔주려고 그렇게 애쓰는데 오히려 놈은 민우가 진짜 자기를 놓을까봐 발악하고 있다. 이제 그만해.
진실은, 진실인 채로 묻으면 되는 거야. 애써... 외면하지 말라고. 애가 아프잖아.
“아, 나 요새 너무 감상적이 됐어.”
“놀고 있네.”
신혜성, 넌 그냥 게임이나 해. 내 대사에 껴들지 말구.
결국 민우는 꼬박 이틀을 앓았다.
하루에도 수십 개인 스케줄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체력이었으나, 문정혁은 신경질만 내는 민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으로 녀석을 돌봤다.
이틀째 되는 날에서야 민우는 잠이 들었다. 깨울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자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11월 말을 넘겼을
무렵, 연말이 다가옴에 따라 우리는 들뜨고 흥분되는 기분들을 감추지 못한 채 겨울을 맞게 되었다. 후속곡도 마무리 되며 다가올 12월의
콘서트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두 녀석의 거리는 조금 좁혀진 듯 했다.
“흠..”
연습실 구석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빠진 듯 끙끙대며 머리를 긁적이던 건 정혁이었다. ‘아무도 다가오지 말 것’이라는 오로라를 내뿜으며 평소 버릇대로 흰 종이에
그림과 글씨를 깨작대며, 개인기 무대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 슬며시 녀석의 옆으로 가 쭈그리고 앉았다.
“너 설마 라이어를 부를
생각이냐.”
“... 하아, 그러게. 고민이다.”
7집에는 녀석이 쓴 곡이 두곡이 있었다. 가스펠곡인 ‘나의전부
part2’와 이별의 아픔이 담긴 '라이어(Liar)'. 정혁이는 라이어를 부르고 싶었겠지만,
“쟤 이제 좀 나아졌는데 이거
불러서 다시 악화되면 난 진짜 미쳐 버릴지도 몰라.”
이게 녀석의 이유였다. 평소 안하던 짓까지 해가며 민우의 기분을 맞춰주고
내게 와 한탄을 하는 게 녀석의 일과가 되어버린 요즘, 그나마 나아져가는 민우를 향해 이런 지랄스러운 노래를 외쳐대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동완아.”
“왜, 임마.”
“근데 나 이거 부르고 싶다.”
“......”
“이거 부르고 민우
울리고 싶다.”
“... 변태 같은 자식.”
“민우가 좀 울었으면 좋겠다.”
“......”
“속 시원하게 한번
울고 나면 모든 게 달라져 보일 텐데...”
“......”
“내가 얻으면 얻을수록 민우는 가슴 안에 응어리만 자꾸 늘어가는 거
같아.”
그래, 니 녀석 눈에도 민우가 아픔을 안고 사는 게 보이는 거냐. 다 너 때문이라는 것도?
“눈 먼
사랑받기. 최고로 인정받기. 박수받기. 또 가끔씩 치고 박기...”
녀석의 중얼거림에 가슴이 까맣게 멍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엄마가 되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못나게 피식 웃는다. 그리고 그 큰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와줄 거지.”
“......”
침묵으로 대답했다. 녀석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민우에게 가 귀찮게 장난치는 것도 잊지 않고.
2005년 12월 9일. 사나운 꿈에 잠을 설친 탓에 종일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다. 정혁이 녀석의 장난도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만큼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해마다 결과는 똑같지만, 그래도 참
두근거린다.”
민우가 느껴보라며 내 손을 제 심장에 가져갔다. 콩닥콩닥. 민우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우리는 늘 해마다 그래왔다.
‘올해는 비 아니면 수영인건가.’ 중얼거리던 혜성이 말처럼, 우리는 데뷔한지 7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흔할 것 같은 가요대상을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해마다 얼마나 애태웠던가. 늘 이 시기 쯤에서 지어지는 결과에 우리는 무대 뒤에서 쓸쓸하게 박수를 치며 웃었고 팬들은 뒤돌아서서
울었다.
“신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기쁨을 주시겠지.”
“...응.”
내말에 민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올해도 무대 뒤편에서 박수치게 될지라도, 우리는 정말 잘했으니까 자축이라도 하자. 정혁이의 말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 올해 정말 열심히 달린 거 같아.”
“......”
너도 그리고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 말이야.
“누구야?”
“몰라. 수영이 아냐?”
“나 신화라고 들은 거 같은데, 아닌가?”
“에이, 설마.”
저녁시간이 지났을 때쯤에서야 가요대상이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무대 한편에 다 같이 서서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마지막
대상발표에 누군지 몰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얼핏 신화라고 들은 탓에 우리가 아니냐고 물었지만 민우는 그저 설마하며 웃기만 했다.
“신화!”
어?
“야, 우리잖아.”
“뭐?”
“신화! 아니 자기들이 된지도 모르고
있어요!”
“... 우리야?!”
민우의 두 눈이 크게 떠지며 내게 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냐고. 정말
신화가 대상이 맞냐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다 부둥켜안고서야 알았다. 아, 신이 존재하긴 하는구나.
“아..”
앵콜송을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정신없이 끝내고 대기실에 들어서자, 혜성이가 작게 탄성을 지르며 또 눈물을 쏟아냈다.
꿈같아 실없이 웃다가 얼굴에 많은 감정이 담긴 멤버들을 보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가요대상 신화. 이 말 한번 듣고 싶어 7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오늘 누가 제일 많이 울었어요?”
“... 혜성이랑 민우가 제일 많이 운거 같아요.”
대기실까지
따라 들어온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여유롭게 답하는 정혁이의 말에 민우를 쳐다보았다. 녀석의 말대로 두 눈이 토끼처럼 새빨개져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친구 아니면 부모님이겠지. 아니면... 여자친구?
“동완아.”
“어, 어.”
“이리 와봐.”
그렇게 정신없이 있을 사이 정혁이가 뿔뿔이 흩어져있던 모두를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민우의 손을 잡아당겨 앞에
세웠다.
“우리 멤버들, 사장님, 코디들, 매니저형님동생들, 부모님들, 형제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근 7년 동안 서로 아껴주고
노력하며 쌓아온 결과가 오늘이었습니다. 비록 이 트로피가 우리의 손에 쥐어졌지만 끝이 아닌 시작점이기에 앞으로도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자식... 이럴 때 보면 진짜 리더 같단 말이야. 기도를 하듯 모두를 향해 감사와 격려를 담은 녀석의 말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져 왔다. 이제야 실감이 난걸까.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모두가 녀석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정혁인 모두를 향해 다시 한 번 성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민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민우야, 고맙다. 니가 우리 중 처음으로 용기 있게 솔로앨범을 내줘서 우리 다 잘할
수 있었어.”
멋들어지게 민우에게 대상트로피를 내밀며 더 멋들어진 멘트가 이어졌다. 여기저기 함성이 들렸다. ‘이민우 만세~’,
‘민우오빠 수고했어!’ 라며 휘파람 소리도 났다. 민우의 시선이 정혁이에게 한번, 트로피에 한번 닿았다. 그리고 쉬이 내밀지 못하던 손을 겨우
내밀어 트로피를 건네받아 가슴에 꼭 안았다. 그런 민우를 정혁이가 꽉 안았다.
‘민우야, 내가 너 꼭 대상 트로피 너한테 줄게.
내가 꼭 줄게.’
해마다 무대 뒤편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민우에게 정혁이가 했던 말. 7년 만에 정혁이의 다짐은 현실이 되어주었다.
“나의 전부 아니었어?”
콘서트 전날, 최종리허설이 진행되던 중간 멈춰진 건 정혁이의 개인기에서였다.
곡이 바뀐 것 같다며 민우가 중지를 시켰다. 역시 얘기가 필요할 듯 싶어 혜성이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나의
전부 한다며. 내가 믹싱까지 해줬잖아.”
“......”
“야아, 말 좀 해봐. 왜 마음이 바뀐 건데.”
“......”
“야아아...”
두 녀석의 문제였기에 옆에 있어도 딱히 끼어들기가 애매했다.
“야, 김동완. 넌 뭐야. 왜
말 안했어.”
“얘가 해 달랬어.”
“......”
미안하다, 정혁아. 정혁이를 방패삼아 꼬리를 숨기자 민우의 눈이
짜증난다는 듯 날카로워졌다. 미간이 찌그러지게 인상을 쓰더니 한참동안 우리 둘을 번갈아가며 째려보기만 했다.
“하지 마.”
“내 무대야.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내 개인무대야.”
“듣기 싫어.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민우로써도 듣기
싫을 게 뻔했다. 그 노래 때문에라도 아팠던 가슴이 이제 겨우 났나 싶었는데 또 생채기를 내다니. 내가 봐도 문정혁은 너무 잔인했다.
“야-”
“나 이거 너한테 불러줄려고 만든 노래야.”
“......”
“그러니까 들어.”
“듣기
싫어. 됐어. 안불러줘도 돼.”
“들어.”
정혁이가 주는 아픔이 민우에겐 가혹했다.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는 정혁이를
붙잡지 못한 채 민우가 귀를 틀어막으며 주저앉았다.
“동완아.”
“어? 어.”
“올라와.”
민우를
놔둔 채 정혁이를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리허설을 마치는 새벽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시선도 오가지 않았다.
“아, 짜증나.”
벌써 이 말만 들은 게 20번째. 버릇처럼 엄지손톱을 틱틱 물어뜯는 민우의 손을
저지시키며 나름대로 공연준비를 했다. 늦은 시작에 말이 많았고 관객석에서는 실망과 원성의 말들이 들려왔다.
“형.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어.”
“... 진아아아아아아.”
결국 수습반으로 충재가 나섰고 민우는 충재를 껴안으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래, 말없이 멍하니 있는 것보단 훨씬 낫구나. 충재에게 ‘수고’를 건넨 후 정혁이에게로 갔다.
“머리 꼬라지하고는.”
“어때?”
“좋을 리가 있냐.”
눈짓으로 민우의 상태를 묻고는 입술을 깨무는 녀석. 아직도 갈등하는 듯 하지만 이미
결정은 되었고 이제 와서 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에릭아.”
“응?”
“넌 오늘을 후회하지 않을 거다.”
“... 당연하지.”
“화이팅.”
“화이팅!”
두 사람의 화이팅에 무대 위로 섰다. 무대의
셋팅은 평범한 사무실 풍경에서 따왔고 정혁이는 랩을 나는 노래를 맡았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만든 녀석과 나의 무대. 녀석의 절절한 랩을, 나의
애타는 노래를 팬들이 따라 불렀다. 나는 그날의 감동을 아마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화이팅~”
“멋졌어!”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하고 있던 가족들과 멤버들이 격려와 찬사를 해주었다. 리허설을 제대로 못해 아쉬웠다는
대답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대기실 구석엔 정혁이와 민우가 마주서 있었다. 민우의 눈에선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입을 앙 다문 채 아무 말
않는 민우에게 정혁이도 머리만 긁적댈 뿐 쉬이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칭찬이든 꾸중이든 달게 받겠다며 당당하게 말하더니 결국 민우 앞에선
그저 소심한 녀석일 뿐이었다. 턱 끝까지 떨리며 울음을 참던 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입은 열었지만
다음 말을 쉬이 꺼내지 못했다. 울음이 목까지 넘어와 살짝 건들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정혁인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내려 민우의
팔을 잡았다.
“멋있게 보일려다...”
“......”
“가사 틀려버렸다.”
“......”
주르륵.. 순간 눈꼬리에 걸려있던 눈물방울들이 터져 민우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 한 병을 다 마셔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온다며 괴로워하던 녀석이, 아무리 울고 싶어도 울어지지 않는다던 녀석이, 겨우 정혁이의 말 한마디에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 내다니...
신기하고 신기해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민우를 달래줄 생각 없이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민우가 운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민우가 마지막으로
운게 언제더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좀 진정이 된 후에야 정혁이가 달래주려는 걸 몇 번이고 뿌리쳤다. 안아주려는 걸 몇 번이나 밀쳐냈다.
하지만 결국은 정혁이에게 안겨 엉엉 울어대는 녀석을 보며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 결국 널 웃게 하는 것도 울게 하는 것도 정혁이
밖에는 안 되는구나. 니가 녀석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그래, 이제 실컷 울어라....”
“......”
“사랑해. 민우야.”
이렇게 바보커플들이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Epilogue. 실은 녀석이 모르는 얘기가 하나 있다.
“이제 내려!”
“어우씨, 완전 무겁네.”
비상계단에 어정쩡하게 서서, 한손에는 옷가방을 어깨에는 민우를 메고 있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멋있게 대기실을 나오긴 했다만 쓸데없는 짓을 했지 싶었다.
“근데 어째... 나보다 니가 더 땀이 나냐.”
겨울이 코앞이건만, 민우는 머리가 흠뻑 젖어 누가 보면 얘가 나를 메고 온 게 아니냐 생각할 정도였다.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뺏어
뒤적거리는 녀석의 머리통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아, 씨발. 왜 내 옷은 없어.”
“내꺼 입어.”
“지랄.”
“니 옷 젖어서 내가 아까 세탁 보냈어. 내꺼 입어.”
“씨...”
“어허, 욕하지 마라.”
“......”
“풉-”
‘니 옷 크단 말야, 개자식아.’ 라며 작게 중얼거리는 민우의 말을 용케 듣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한참 사귈 때는 내 옷 커도 잘 입고 다녔는데... 같이 살던 때가 생각나 괜히 감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야-”
잠시 멍해져있던 사이 민우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돌리자 불쑥 팔을 내민 녀석이 들어왔다. 응? 뭐?
“접어.”
‘접어줘’도 아니고 ‘접어’란다. 말하는 폼 하고는.. 민우의 손끝까지 내려오는 남방을 두 번 접자
녀석의 작은 손이 짠~ 하고 나타났다. 반대 손을 내밀어 접어주고 나자 또 어색하게 침묵이 흘렀다.
“가자.”
욱하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인 충동이었다. 옷가방을 챙겨 나가려는 민우의 팔을 잡아끌어 억지스레 키스를 했다.
“읍... 야!!”
아, 또 맞았다. 문정혁, 이민우한테 몇 번째 얻어맞는 거냐. 저절로 허공을 향해 한숨이
흘러나왔다. 씩씩대며 흘기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쿵하고 심장이 떨어졌다. 또 갑자기 사라지는 거 아니지? 괜스레 무서워 녀석의 팔을 잡았다.
“야, 문정혁.”
“왜, 이민우.”
“어쩔 거야.”
“......”
“어쩔 거야.”
녀석의 말에 한참동안 대답을 찾아 헤맸다. 질문을 파악하기 전에 난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현실에
적합한 대답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외면하고 있었다.
“난...”
“......”
“사랑과 영원 둘 다 지킬
거야.”
“......”
“이미 오래전에 결심했어.”
“......”
아... 이 순간의 감동을 말로 어떻게
표현할까. 이민우가 나를 지켜준단다. 이 못나고 바보 같은 나를 지켜주겠단다. 자신을 아프게 했던 놈을...
“난 어떤
개자식처럼...”
녀석의 말을 삼켜 다시 녀석에게 전했다. 녀석의 감은 두 눈의 떨림을 가슴에 새기며 나를 안은 녀석의 두 팔을
온전히 기억하며... 세상이 아무리 엿 같아도 이민우가 내 옆에 있는데 뭐가 무서울까. 내가 이민우를 못 보는 것 말고 무서워하던 게 있던가.
두 팔로 민우를 꽉 안았다. 녀석의 두 팔이 따뜻하게 나를 다독였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문정혁은 할 수 있다.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결국 난 어떤 확신을 얻어냈다. 그래, 이민우는 내가 지킬게.
w. 신화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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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ar 속 Fact 팩트 (믿거나 말거나~)
1. 7집 녹음 중 술
먹고 녹음한 적이 있다던 에피소드
2. 7집 콘서트 때 실제로 에릭오빠가 가사를 살짝 버벅댔었지 ㅎㅎ
3. Liar는 실제로
큰오빠가 ㅂㅅㅇ씨가 아닌 그 다음에 사귄 분이랑 헤어지고 나서 만든 곡이라고 했었음 ㅇㅇ
4. 제주도 도피는 유명하지?? 애기오빠가
데려온 것도 ㅎㅎ
5. 동거는 한 적 있다는 증언에 팩트 반~ 설정 반~
6. 애기오빠 저때는 위가 안좋아서 잘 안먹었었고 차에
녹차를 한박스씩 가지고 다닐만큼 녹차마니아~
7. 대상 +ㅁ+ !!!!
8. 큰오빠 대사는 인터뷰 때마다 오빠들이 애기오빠가
솔로활동 스타트를 잘 끊어줘서 다 잘할 수 있었다고 했어서 그 말을 빌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