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hlist 피칸파이
wishlist 피칸파이
“음? 언제 왔어?”
“3시간 전에 왔다. 진짜 화상.”
어디냐 왜 안 오냐 먼저 와있다는 닦달에 서둘러 대기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길게 누워 잠을 청하는 정혁부터 눈에 보인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던 종현이 대답을 하고는 혀를 끌끌 찼다. 아, 그러고 보니 언제 오라는 시간을 얘기 안했었나. 민우는 입고 있던 운동복을 벗으며 이리저리 눈을 굴려보지만 영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누워있는 정혁을 슥 보고는 샤워실로 향했다.
“아니, 이거 꽉 끼잖아. 날 옷에 묶은 거 같잖아.”
타올로 머리를 털며 나오자 정혁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들린다.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오늘 무대에서 입을 옷을 미리 입어보는데 사이즈는 이미 알아서 입어보지도 않고 대충 가져온다는 것이 그만 너무 꽉 끼는 옷을 가져와버린 것이다. 투덜거림에 스타일리스트가 진땀 빼는 중이다.
“이상하다. 저번에는 이 사이즈 헐렁했는데?”
“그때는 급하게 빼느라 마른 거였고... 요즘은 살도 찌고 운동한다고 했잖아.”
스타일리스트와 계속되는 말싸움에 정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입이 삐죽 나와서는 어쩌지 하며 툴툴 대는데 스탠드 거울 너머로 민우가 보이자 금세 방긋 웃는 얼굴이다.
“민우야아~”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냥. 그런데 나 옷이 껴. 안 터지나 몰라.”
민우가 옷매무새라도 잡아줄까 싶어 다가가자 익숙한 듯 손을 내밀고 고개를 약간 들더니 민우를 내려다본다. 소매를 만져주는 민우의 익숙한 손놀림에 방금 전의 언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진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몰라.”
“내일 바지 바꿔 줄게. 오늘은 그냥 입어. 자기 몸이 이렇게 좋아졌을 줄 누가 알았나.”
“... 알았어.”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정혁의 뒤로 스타일리스트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오케이라는 입모양과 함께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긍정의 대답을 보냈다. 정혁은 영 불편해서 안 되겠는지 이따가 갈아입는다며 원래 입고 왔던 바지를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야, 이종현. 너네 왜케 일찍 왔냐?”
“아, 몰라. 아침부터 일어나서 생난리를 치더니 뭐 갖다 줘야 된다고 식으면 안 된다고 파닥파닥 대더니 아까 뭘 또 잔뜩 들고 오던데 어디다 놓은 건지.”
“뭘 갖고 왔는데?”
“몰라. 완전 소중하게 들고 오던데?”
뭘 갖고 온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민우는 한참 머리를 갸웃거리다 스타일리스트의 손에 이끌려 거울 앞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눈을 감으니 위가 살짝이 아파온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바쁜 스케줄에 오늘 있을 콘서트 때문에 스트레스 게이지가 최고조. 때문에 잠을 못자더니 속이 영 말이 아니다. 귓가 너머로 들려오는 드라이기 소리와 사람들 소음을 자장가 삼아 살짝 잠이 들었던 걸까. 꾸벅 고개가 떨어지는 느낌에 번쩍 눈을 뜨니 정혁이 바로 보이는 시선 아래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처럼 쪼그리고 앉아있다.
“아~”
“아-”
눈이 마주치자마자 정혁을 따라 입을 벌리니 입 안으로 무언가 쏙 들어왔다. 우물우물 씹으니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입맛이 당겨 다시 아- 하고 입을 벌리니 또 달달한 그것이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갑자기 웬 피칸파이?”
“먹고 싶다며.”
“내가? 언제?”
“있어.”
“... 맛있다.”
“용희가 너 그제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다 그래서 만들어 왔어.”
“아-”
스트레스에 위장이 아팠던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계속 민우가 받아먹자 정혁도 흥이 났는지 제 다리가 저리든 말든 열심히 민우의 입에 넣어준다. 서비스로 빨대가 꽂힌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잔. 밖에서 공연장 체크를 하다 잠시 민우의 상태를 보러 들어온 매니저 용희가 보더니 깊은 한숨을 쉰다.
“징하다, 진짜. 진작 연락을 할 걸 그랬네.”
민우는 기분이 제법 좋아졌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끙차- 정혁이 드디어 바닥에서 일어나 저린 다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는데 민우가 그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어 흔든다.
“근데 내가 언제 피칸파이 먹고 싶다 그랬어?”
“정글의 법칙 안 봤어?”
“... 아, 그거 하는구나. 아직 못 봤는데.”
“거기서 니가 뜨거운 피칸파이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랬었나? 먼 곳을 응시하며 정글의 법칙을 찍었던 때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자 어렴풋하게 그날이 떠올랐다. 너무 배도 고프고 정신도 없었던 두 달 전의 추억. 민우는 ‘아~’하더니 눈꼬리를 접으며 씩 웃는다.
“그냥 너 보고 싶다는 말이었는데.”
정혁이 놀라 눈을 마주치자 씩~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는다. 정혁은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다시 삐친 척 입을 삐죽거렸다.
“아, 뭐야~ 그래서 내가 이 주말에 아침부터 일어나서 이거 만들고 뜨듯한 거 먹일려고 부리나케 달려왔건만 없고...”
“알았어. 알았어. 고마워. 덕분에 컨디션 올라갔어.”
내려다보던 정혁이 허리를 숙여 민우에게 입을 맞추었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향이 입술 안으로 전해진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 사이로 아쉬움이 느껴진다.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 따뜻한 걸로 다시 해줄게.”
민우는 정혁의 손등에 쪽- 뽀뽀를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