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는 조금 불안정한 상태다.
스폰서가 들어왔대서 버럭 화를 내다가, 한 번만 밥만 같이 먹어주면 된다는 실장의 말에 마주하면 면전에 물이라도 끼얹어야지 이를 바득바득 갈며 간 호텔에, 하룻밤에 100만원도 넘는 스위트룸 소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던건 남자였다. 그것도 자신과 아주 많이 닮은.
"아, 오셨습니까?"
도플갱어라고 있다. 세상에는 나랑 닮은 사람이 세명이 있는데 만약 서로 발견하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던가... 넋이라도 잃은 것처럼 생각이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다시 눈 앞의 남자에게 시선이 꽂혔다. 문을 닫고 등을 기대어 아무 말도 없이 시선만 보내자 잠깐 눈이 마주쳤던 남자는 금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머뭇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 저기... 식사는 하셨습니까?"
"......"
"아, 그러니까 실은... 티비에서 보고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랑 너무 닮으셔서... 아, 그러니까 방법이 좀..."
"순서가 틀린 것 같은데."
그대로 두었다가는 한없이 길어질 것 같아 잠시 치고 들어가자 목을 꽉 조이는 듯한 넥타이를 매만지던 남자는 놀라 다시 세기와 눈을 마주친다. 티비에서 봤다면 아마 얼마 전에 했던 수목드라마일 것이다. 주연도 아니었고 조연도 아니었고 스쳐지나간 단역이었다. 흔한 양아치 역할이었고 처음도 아니었다. 연기가 좋아서 시작하긴 했으나 눈빛이 세다고 해서 들어온 역할은 그런 것들 뿐이었다. 스폰서란 얘기에도 결국 나와버린건 어쩌면 속으로 작은 변화를 바랐을수도 있다. 지금 눈 앞의 남자는 의외의 전개이지만.
"어... 그 제 이름은 차도현입니다. 아이디엔터 부사장직을 일단은 맡고 있습니다만."
"일단은?"
"네, 낙하산이라 언제 잘릴지 몰라서 말이죠."
그리고는 슬쩍 입가가 웃는다. 저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가는 이쪽이 더 죄책감이 들 것 같은데. 세기는 따라 웃을 뻔한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자신은 분명 끌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소파에 앉은 큰 멍멍이 같은 눈을 한 남자 때문에 자꾸 정신줄이 나가버린다.
"스폰서가 뭔지는 알고 제의를 한겁니까?"
"아, 그게 좀... 그렇죠. 기분이 나쁘실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그런데 신세기씨 회사 측에선 개인적인 만남은 안된다고 하셔서."
"아이디엔터 부사장이니까 안되지."
"그래서 다시 연락해서 소속을 승진으로 하고 후계자라고 하고 스폰서라고 하니까 바로..."
천진한 표정으로 입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나 나올 법한 무서운 멘트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세기는 뒷목과 어깨가 순간 싸해지더니 머리가 띵- 잠시 두통이 일었다. 주먹을 쥔 중지로 오른쪽 눈가를 꾹 누르고나니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다.
"그럼... 원하는건?"
"예?"
"스폰서니까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애인을 하던가. 원나잇을 하던가."
"......"
"나는 원하는게 있습니다. 미니시리즈 주연이요. 스타가 되는거죠. 그쪽 회사에서 준비중인 드라마면 뭐라도 상관없..."
"궁금했습니다."
세기의 제안에 도현이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토끼 같던 눈빛이 조금 더 어두워지며 소파에서 일어나 이쪽을 향해 한걸음씩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몇 걸음 더 다가가니 문에 붙어 경계를 하던 세기와 점점 가까워졌다.
"나와 닮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얼굴 말고 또 닮은 모습이 있을까."
"그래서... 찾았나?"
"아니, 당신과 나는 달라."
"......"
"눈빛도 목소리도 느낌도. "
세기는 가까이 다가온 도현의 얼굴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눈을 마주쳐도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에 숨이 멎을 듯 하다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상한 사람이네."
"제가 말입니까?"
"그래, 당신. 이상해, 차도현."
"나르시즘이라고 해두죠."
한발 더 다가간 도현은 눈을 감으며 세기에게 더 다가가 입술을 맞췄다 떨어졌다. 그리고 그 여운을 느끼려는 듯 눈을 감은 채 고요 속에 서로의 숨소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 귀를 기울였다.
미친 나르시즘이네.
문득 귀에 박힌 세기의 중얼거림에 도현이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머쓱한듯 아랫 입술을 깨물며 눈을 뜨자 세기는 아까보단 조금 따뜻한 눈빛으로 도현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원하는 걸 생각중입니까?"
"우리...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안쪽으로 들어가겠냐는 도현의 고갯짓에 세기는 문에서 등을 떼고 한발 앞으로 내딛었다. 뭐,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닌 것 같으니.
"하죠, 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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